Page 125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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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만세”
이렇게 시위자의 기세에 눌려 일본 경찰은 검거자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구금되었던 동
지를 구해낸 시위 군중은 더욱 열광적으로 만세를 부르며 다시 면사무소로 나아갔다.
이때가 저녁 7시 30분경.
면장과 면서기 일동은 면사무소에 있다가 우시장 쪽에서 만세시위 소리가 들리자 곧 면사무
소로 밀어닥칠 줄 알고 면장을 숨겨두고 면서기 심원식이 상황을 알아보러 밖으로 나와 보았
을 때 수백 명의 군중이 종이로 만든 태극기를 손에 들고 흔들며 열광하는 광경을 보았다. 56)
이성구, 김경도, 이규선, 정규환, 유진홍, 김용준은 500명의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를 에워싸
고 부르짖었다.
“면장은 어디 있는가? 면장을 내어 놓아라!”
“면장은 왜 만세를 부르지 않는가!”
군중들은 일제히 면사무소를 향해 돌을 던져 창유리와 창문을 모두 부수고 다시 주재소로
몰려갔다. 군중은 계속 불어나 7~800명이 되었다.
주재소 앞에는 희미한 가스 등불이 비치고 있었다. 군중은 일제히 길바닥의 돌을 주워서 주
재소를 향해 던졌다. 오오키순사가 전화를 하러 우편소로 달려가자 시위대의 일부는 우편소로
달려와 남포등을 돌로 깨어 버렸다.
이성구, 이규선이 우편소 안으로 뛰어 들어가 성냥을 그어 성냥 불빛으로 어둠을 밝히면서
전화기를 찾았다.
“이런 것이 있기에 때문에 군대가 응원하러 오는 것이다. 쳐부숴서 그 근심을 없애라!”
일동은 함께 전화기를 내동댕이쳐 부순 다음 유리창 63장, 그밖에 우편소 기물들을 부수었
다. 57)
우편소원들은 모두 책상 아래 숨었는데 점점 많은 사람들이 투석하자 우편소장과 소원들은
뒤편 밭으로 달아났다. 58)
이때 정규환은 노동화를 신고 수건을 머리에 매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김기선이 하
는 이발관에 가서 그 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만세를 부르라!”고 계속 독려하였다. 시위 군중은
인근에 사는 일본인 노부요시, 마쓰바라, 노무라, 나니노부, 쓰키노, 이케다, 우노, 무나카타
56)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346쪽.
5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344~347쪽.
5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347쪽.
1910년대 항일운동과 오산 3·1독립만세운동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