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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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오산(烏山)은 오랜 기간 수원에 속한 행정구역이었다. 1914년 4월 1일 수원군 성호면(城湖

                面)이 되었고, 1941년 10월 1일 수원군 오산면(烏山面)이 되었다. 1949년 8월 화성군 오산면
                (烏山面)이 되었으며, 1960년 1월에는 화성군 오산읍(烏山邑)으로 승격된다. 1989년 1월 1일에

                는 오산시로 승격되었다.
                  오산에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일어난 3·1
                독립만세운동에 자극받아 일어난 것이다. 그 당시 행정명은 수원군 성호면(城湖面)이었다.

                  당시 수원군은 수원군 전 지역에 걸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다. 본고에서는 1910년대 경기
                지역의 항일운동에 대해 간략히 알아본다. 그리고 항일운동 중 1919년에 일어난 수원군 지역
                의 독립만세운동에 대해 개략하며, 이 수원군 지역 중에서 오산 지역에서 일어난 3·1독립만

                세운동은 새로운 단원으로 알아보며, 오산의 3·1항일의식과 추모사업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Ⅱ. 1910년대 경기지역의 항일운동





                  일제의 조선 병합 획책은 19세기에 들어오면 노골화 된다. 조선의 안위가 풍전등화에 처하

                며 조선의 위정자들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세계의 변화에 낙오하며 외세의 침략에 둔감
                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 1907년이 되면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이른바 정미 7조

                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군을 강제로 해산시키는데, 이에 전 국민은 일제의 불법 부당한 만행
                에 대하여 치열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서울에서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의 강제 해산에 반
                대하여 항전을 개시한 이래 원주진위대의 뒤를 이어 수원진위대, 강화분견대가 주민 600명과

                연합하여 무장봉기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전쟁을 일으키는데 도화선 구실을 하였다.
                그리하여 1907년 8월에 경기를 비롯하여 강원, 충북, 경상, 전라, 각 도에서 무수한 의병 운동
                이 일어나 일제의 군경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 하였다.                1)




                1)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 1995. 272쪽.


                                                           1910년대 항일운동과 오산 3·1독립만세운동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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