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오산시 지명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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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모루 냇가(천)
흘러온 가장천의 탑동 앞 냇가를 부르는 말이다.
■ 탑동교(다리)
발안과 오산으로 가는 지방도 302호선에서 탑동으로 진입하는 곳의 다리로 10m의
길이에 폭은 7.3m로 1994년도에 준공되었다.
이외에 탑동에는 내건너, 뒷굴, 장밭들, 모장뿌리, 곤두라니, 바위모퉁이 등의 땅이
름이 전해 온다.
(5) 누읍동(樓邑洞)
누읍동은 자연마을의 이름으로 눕새골이라고 한다. 이는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와우형(臥牛形)이라는 데서 기인되어 ‘누운소’가 와전되면서 누읍동으로 기록된 것
으로 보는 설이다. 즉, 누운소→누은소→누음소→누음새→누읍새→눕새로 구전되면
서 누읍동(樓邑洞)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우선 먼저 지명
의 글자 해석을 먼저 따라야 한다고 본다. 樓邑洞(누읍동)의 글자를 그대로 해석한
다면 읍치가 있던 동이라는 뜻이다. 읍치는 현재의 관공서, 즉 행정치소가 있던 곳
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누읍(樓邑)이 있던 곳이다. 예로부터 읍치가
되려면 보편적으로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 첫째가 행정관아, 둘
째가 서당 또는 서원이요, 그리고 셋째가 행궁이다. 이 세 조건은 서로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 누읍동이 이 세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현재 이 세
가지 중에서 눈으로 실제 볼 수 있는 곳은 서원(서당)으로 누읍동 인근 궐동의 오
산화성궐리사이다. 정조가 칙명으로 사액하기 전에는 공서린이 세운 서원(서당)이었
다. 읍루는 누읍동의 지명에 포함되어 있으며, 즉 현재의 누읍동이며, 행궁은 궐동
의 궁(宮)터이다. 이 궁터는 예전에 궁(宮)터가 있어 붙여졌다는 설과 마을의 생김
새가 활의 모양인 궁(弓)처럼 생긴 데서 지어졌다는 설이 전해지고는 있으나, 1899
년(광무 3년)에 발간된『수원군읍지』에 의하면 초평리 궁기리(宮基里)가 나오고,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실시한 행정구역 개편 때에는 초평면의 궁대(宮垈) 등의
명칭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필자는 행궁이 있었던 마을로 본다. 누읍동은 읍치가
있었던 곳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오산시의 법정동 24동은 비록 동으로 나뉘어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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