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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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14년(995년) 수주를 한남(漢南)이라 하고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으나 목종 8년(1005
년) 혁파되었고, 현종 9년(1018년)에 지방관이 부임하는 지주사(知州事)가 되었다. 이때 안산현,
영신현, 쌍부현, 용성현, 정송현, 진위현, 양성현 등 7개 현을 내속하였으며, 당성군과 재양현도
속하였으나 후에 인주(仁州)로 이속된다. 이 당시의 지리적 경계나 영역은 별다른 변화 없이 오
랜 기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산현은 현재의 안산시 일대, 양성현은 안성시 양성면 일대로
추정된다. 쌍부현은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 일원, 정송현은 화성시 정남면의 황구지천 서편,
용성현은 평택 청북읍과 안중읍 일원, 영신현은 평택시 고덕면 일원, 진위현은 평택시 진위현과
서탄면 일대로 보고 있다. 인주에 속한 당성군은 화성시 서신·송산·마도·남양 일대이고 재
양현은 비봉면 일대이므로 이를 제외한 지역이 수주의 직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으로
는 광교산 일대, 동쪽은 마등산·무봉산을 포함하여 이동읍의 송전천 서편, 남쪽은 향남읍과 팔
탄면 일대이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상당히 넓은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중
오산시는 읍치가 위치한 지역의 중심지에 해당한다. 대략적인 위치는 조선시대 고지도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림 1. 지나조선고지도(1623년, 국립중앙도서관, 『水原의 옛 地圖』에서 수정·인용)
고려시대 오산의 유적과 유물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