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0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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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현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1908년 이전에 설립된 학교에 대하여는 기존의 자

               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오산시 교육의 현장과 그 실태를 확인하
               고자 한다.



                1908년 “수원 청호면 오산리 사립 명진학교는 해지 시민들이 협의하여 설립하였는데 학도가
               날마다 더하여 대단히 장진할 기망이 있으나 경비가 넉넉지 못한고로 해지 장시에서 소를 매매

               하였는데 매필의 이십전식만 수합하여 해교에 보용하겠다고 시민 박성배 등이 해군수에게 청원
               한고로 해군수가 학부에 보고하였다더라.” 자료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사립 명진학교는 시민들
               이 설립하였고 운영비를 위해 소를 매매할 때마다 이십전(二十錢)을 운영비로 지원하겠다는 계

               획이다.


                1915년 7월 17일 : “京畿道水原郡所在烏山公立普通學校ニ烏山公立簡易農業學校ノ附設ヲ認

               可ス” 오산공립보통학교에 오산공립간이농업학교의 부설이 인가를 받았다.


                1918년 4월 10일 : 烏山公立尋常小學校에 高等小學校의 敎科倂置를 認可하였다.

                1928년 3월 1일 : 두 차례 화재로 소실된 대성학원을 중건(重建)하여 4월 내에 완성하기로 하
               였다는 기사다. “경기도 수원 오산(京畿道水原烏山)에 잇는 대성학원(大成學院)은 이래 오개년

               동안을 오산사-ㄹ청년동맹(烏山사-ㄹ靑年同盟)에서 경영하야 만흔 무산아동(無産兒童)을 교
               양하야 오든바 불행히 작년도에 이르러 불의의 화재를 당하야 무참히 전소의 비운을 두 번이
               나 만나게 되엇슴으로 동 청년동맹에서는 대성학원중건회(大成學院重建會)를 조직하고 전조선

               에 명함(名啣)을 판매하야 그 기본금 모집에 노력한다함은 이미 보도한바어니와 동중건회에서
               는 지난 이십육일 오후 팔시부터 대성학원중건회 제일회 임시총회를 열고 각반사항을 토의하얏

               다는데 대성학원중건회 내무(內務)유지에 관한 건에 이르러 장시간 토의한 결과 내무를 수원성
               내(水原城內)에 두게 되엇든 것을 오산으로 옴기기로 하고 임시사무소를 사-ㄹ청년동맹에 두고
               동 동맹에서 전책임을 지고 오는 사월말일 안으로 동학원 불탄자리에 건축하야 노키로 결의하

               얏다하며 다시 사고에 의하야 사면하게 된 위원을 보선한 후에 이어서 오산에다가 동회영리부
               (同會營理部)를 설치하고 오산전시에 석유(石油)를 판매하야 그 이익을 대성학원 중건에 충용키
               로 하얏스며 동청년 동맹원 일동이 오는 오일부터 활동을 개시하리라는데 보선된 위원은 아래

               와 갓다더라(오산)”
                委員氏名 : 委員代表 孔錫政, 內務 李大男, 外務 朴奎喜, 檢査 朴謹實 金基桓, 營理 韓相錄,




               328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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