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6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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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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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를 세부적으로 보면 대한매일신보  1건, 총독부관보 12건, 시대일보  3건, 중외일보  6건,
                      4)
               신한민보  1건, 동아일보 34건이다.
                          순번                         매체                        건수
                            1                     대한매일신보                        1
                           2                       총독부관보                        12
                           3                       시대일보                         3
                           4                       중외일보                         6
                           5                       신한민보                         1

                           6                       동아일보                         34


                자료가 실린 신문사들은 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신문사의 특징을 분석하지
               는 못하였다. 다만 기사를 비교할 수 있는 건이 있다면 이는 같은 사안에 대하여 각 언론사가 어

               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1)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일제의 손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당시 일본의 언론탄압 속에서 외국인의 치외법권을 이용, 신속
                한 보도와 준열한 논설로써 대중을 계몽하고 항일사상을 고취시키는 등, 한말의 대표적인 민족지로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2) 時代日報(1923.03.31.~1926.08) : 사장 겸 주간은 최남선, 정치부장은 안재홍, 사회부장은 염상섭이었다.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했고, 당시의 여느 신문들과는 달리 1면에 정치 기사가 아닌 사회기사를 실었다. 초기 발행 부수가 2만 부에 이르러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3대 민간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인해 여러 차례 발행인이 바뀌
                다가 결국 폐간되었다.
               3) 中外日報(1926.11.15.~1931.06.29) : 〈시대일보〉의 후신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낸 이상협(李相協)이
                1926년 9월 〈시대일보〉의 판권을 넘겨받았다.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대항해 ‘가장 값싸고 가장 좋은 신문’을 내세웠
                다. 그러나 역시 이 시기의 여느 신문들처럼 언론 탄압을 받았으며, 고질적인 재정난으로 결국 폐간되었다.
               4) 新韓民報 : 1909년 2월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민단체인 국민회(國民會)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국민회는 하와이의 교
                포단체인 한민합성협회와 공립협회가 통합하여 1909년 2월 발족하였다. 1910년 2월 국민회와 대동보국회가 통합되며 대한인
                국민회로 출범하였다. 그에 따라 합성협회 기관지 『합성신보』와 공립협회 기관지 『공립신보』(제118호까지 발행)가 통합되어 『신
                한민보』(제119호)로 발간되었다. 대한인국민회가 출범하면서 대동보국회 기관지 『대동공보』 역시 『신한민보』로 통합되었다.



               324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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