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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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된 기록과 나이 드신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때는 평택 서해안(현재의 평
택항)으로의 배를 이용한 물자 수송도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운송
선은 소금배(밑이 평평한 소형배)의 모습으로 다녔다 한다.
지명에 위포(오산 은계동), 황새포(오산 탑동대교 부근) 등 포구의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90년도에 4월경이면 갈매기가 오산천 은계대교에까지 날아와 물고기
를 낚아채는 것을 필자가 직접 본 적도 있다.
오산천 하면 홍수와 장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산천은 하상이 높아 홍수가
날 때는 오산 시내의 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람이 사는 마을로 토해내곤 했다.
현재 오산동과 대원동의 일부는 상습 침수 지역이어서 오산오색시장은 생선 상자가
둥둥 떠다니고, 오산중원사거리, 오산터미널 부근, 옛 화성경찰서(현 CGV오산중앙)
부근 등은 곳곳이 물에 잠겼다. 물이 오산천 범람의 수준으로 되면 이럴 때는 지대
가 높은 밀머리나 갈곶동, 오산대학이 있는 청학산 쪽으로 피난을 간 경험이 오산
천변 오산시민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인공배수 시설로 이런 황당한
일은 겪지 않고 있다.
오산시내가 우기에 침수하는 경우에는 음식물이나 잔류생물체가 많이 방치되는 관
계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잡식성이고 사체도 먹는다는 까마귀가 많았던 것이다.
이 당시 문학 작품 속에 까마귀가 소재가 되어 표현되기도 했다.
용인시 남사면 출생으로서 성호초등, 양정중·고, 고려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오
산중 교사(1951~1954)와 오산고 교사(1954~1959), 경성농업대학 조교수, 서울시
립 산업대학 교수를 역임한 수필가 구건(具建. 1920~1975)의 작품 중에서 오산에
서 까마귀를 보고 작품에 반영한 시 한 편을 감상한다.
「까마귀 날던 때」
산발머리 양버들 울타리로 싸이어
검은 양철지붕 큰 도수장간이
윗동네 한복판에 홀로 섰을 때
무너진 콘크리트 큰 다리가
통나무 기둥 다리이었고
오산내 그 물이 섬둑가에 얼어붙고
그 큰 쇠장이 섬둑 거리에 섰을 때
검푸른 하늘 흰 눈벌판 위를
시커먼 까마귀 떼가
까옥까옥 날았었다
한여름 몇 번 장마 붉덩물로 싸이어
시달래 오막살이 집 한 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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