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2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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웠는데 나무를 깎아서 만들 것인 나무판자에다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썼으며 그것을

               장승으로 세웠었다고 전한다.


                이렇듯 부산동은 마을 전체가 제의의 장소였다. 제의는 당집으로부터 시작하여 당우물 옆의

               엄나무, 성황당, 장승으로 이어졌다. 주민들의 생활공간을 둘러싸고 마을의 동서남북이 제의의
               장소였다. 그런데 오늘날 제의의 장소였으며 신성한 공간이었던 마을은 개발로 인하여 그 자취

               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는 단지 한 마을의 변화가 아니라 오산시의 문화적, 정신적 뿌리의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
               이라 그 아쉬움이 크다.








               Ⅴ. 나오는 말





                본고 「부산동 마을신앙의 의의」에서는 부산동의 마을신앙이 재인청과 얼마나 깊은 인연을 맺
               고 있는지를 확인하여두고자 한다. 그간 경기재인청의 본거지가 오산의 부산동임은 여러 글들

               을 통하여 소개되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근거가 정리되지는 못하였었다. 이에 필자가 경기재
               인청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 찾게 된 몇몇 근거를 정리하여둠으로써 경기재인청과 부산동, 부
               산동과 이용우 가계의 관련성을 정리함에 목적을 두고자 하였다.



                부산동의 마을신앙을 통하여 부산동은 오산시의 시원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부산(釜山)이라 쓰고 지역에서는 ‘가마뫼’라 하였다. 이는 부산(釜山)의 부(釜)가 ‘가마’로 ‘가맣
               다’,‘검다’의 의미이며 ‘검은산’의 의미로 부산으로 기록되었음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또한 오산
               (烏山)은 까마귀가 많다고 하여, 까마귀와 관련이 있어서 명명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오

               (烏)는 ‘검다’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부산과 오산은 같은 의미가 된다. 오산과
               부산은 모두 ‘검은산’이다.
                그런데 검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그리 긍정적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

               다. 그러나 도교(道敎)에서 ‘검다’는 의미는 ‘원천적 깨달음’, ‘지혜’의 의미가 담긴다. 이런 점이
               오산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온전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오




               220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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