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1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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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뒤쪽 벽에 붙어있는 가는 나무는 가운데 축문을 놓고 양 옆으로 촛대를 올리는 용도로 사용
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올려놓아서는 안 된다. 그 앞으로 붙여져 있는 넓은 젯상은 음식을 올
려놓는 것이다. 제사를 올릴 때는 음식을 놓는 젯상의 위, 4개의 다리가 보이는 앞, 양옆을 모
두 창호지로 가린다. 제기는 놋그릇을 사용했었지만, 다시 제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은 플라스틱
그릇과 양은그릇들을 사용한다. 특이한 점은 다른 사람은 신을 수 없고 오직 제관만이 신는다는
신발이 한 켤레 있다.
■ 성황당
또한 예전에는 성황도 있었다. 옛날 땅 주인은 조동순씨로 현재 대성빌라가 있는 곳에 성황이
있었다. 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난 뒤에 성황에서 시루떡을 해 놓고 마을 사람들이 잘 되기를
빌었다.
■ 당우물
당집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조그만 우물이 있는데 마을의 당우물이다. 당우물은 땅에서
물이 솟아 한겨울에도 그다지 차갑지 않아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함부로 당우물
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채웠다. 당우물은 제사를 지낼 때 사용을 하였다. 제관이 목욕
하거나, 산제삿날 설거지를 할 때만 사용하였다.
우물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마을의 공동우물의 물이 부
족하여 예전에는 간혹 이 물을 길어다 먹기도 하였는데 물을 먹은 사람에게 반드시 해가 갔다고
한다.
■ 당나무
당의 왼쪽으로는 엄나무가 있다. 수령이 약 200년가량 되었다고 하며 이 나무에도 제를 올린
다. 이른바 신목(神木)인 셈이다. 우물 옆 엄나무에는 오색의 천이 묶여있는데 이는 마을에서 한
것이 아니라 무속인들 기도를 하고 묶어 놓고 간 것이다.
그리고 LG물류창고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에 팽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그곳에서 열 걸음
정도 더 마을로 들어오면 엄나무가 있었고 상여막도 있었다고 한다. 장승은 바로 그 자리에 세
부산동 마을신앙의 의의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