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8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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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오산지역의 옛 교통로
1. 문헌 속의 오산과 삼남대로
국가적 제도 아래 확충된 도로망은 다양한 대상이 이용하였으며, 특히 오산지역일대는 세종
대에 한양과 경기를 수호하는 군사적 기능이 강조된 수원도호부로 승격되면서 군사적 요충지로
도 인식되었다. 왕실과 양반들 또한 이 삼남대로를 이용한 기록이 문헌의 곳곳에서 확인된다.
특히 왕의 능행(陵幸)·온행(溫幸)과 관련된 기록에서 삼남대로를 따라 오산지역에 머물렀던 기
록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영조실록에는 한양에서 온양까지 오갔던 온행 노선이 가장 자세하게
나와 있다[표2].
[표 2] 삼남대로를 따라 간 영조의 온행 기록
9월 12일 신해
임금이 온천(溫泉)에 거둥하여 과천현(果川縣)에서 묵었다.…
9월 13일 임자
대가(大駕)가 수원부(水原府)에 머물렀다.…
9월 14일 계축
대가가 진위현(振威縣)에서 머물렀다.…
9월 15일 갑인
대가(大駕)가 직산현(稷山縣)에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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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소사(素沙)를 지나면서 교남(橋南)들판의 풀을 바라보며 전교하기를, “이곳이 명(明)나라
경리(經理) 양호(楊鎬)가 왜적(倭賊)을 격파한 곳인가?”…
9월 16일 을묘
대가가 온양(溫陽)의 행궁(行宮)에 머물렀다.…
9월 17일 병진
임금이 온궁(溫宮)에 나아갔다.…
9월 24일 계해
대가(大駕)가 온양군에서 돌아와 직산(稷山)에서 머물렀다.…
9월 26일 을축
임금이 수원을 지나면서 독성 산성(禿城山城)에 올라 해문(海門)을 바라보며…. 황경원에게
명하여 독성(禿城)의 군기(軍器)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돌아와 말하기를, “궁시(弓矢)와
검극(劍戟)·기고(旗鼓)가 모두 낡아서 성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하니, 임금이 엄하게 하교하여
개수(改修)하도록 하였다.
『영조실록(英祖實錄)』권72, 영조26년 9월
186 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