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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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AD 390년, 백제 진사왕 6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를 역주한 이병도는 그 위

               치를 미상未詳이라고 하였다.


                   六年 冬十月, 獵於狗原 七日 乃返
                   6년 겨울 10월, 구원에서 사냥을 하였다. 7일 만에 돌아왔다.


                 AD 392년, 백제 진사왕 8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辰斯王, 八年, 秋七月, 高句麗王談德師兵四萬, 來功北鄙, 陷石峴等十餘城, 王聞談德能用兵, 不得
                   出拒, 漢水北諸部落多沒焉, 冬十月, 高句麗攻拔關彌城, 王田於狗原, 經旬不返, 十日月, 薨於狗原
                   行宮



                   진사왕 8년 7월, 고구려왕 담덕이 병사 4만을 거느리고 와서 북변을 공격하여 석현 등 10여 성을
                   잃었다. 왕은 담덕이 용병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막지 못하니 한수 이북의 여러 부락이 많이
                   함락되었다. 10월, 고구려가 백제 서북의 요충인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하여 빼앗아갔다. 왕이 구원
                   (狗原)에 머물러 있었는데 10일이 지나도 도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11월에 왕이 구원행궁(狗原行
                   宮)에서 죽었다.



               2) 일본서기의 기록


                           7)
                 백제 진사왕 이 구원행궁狗原行宮에서 시해된 사건은 일본서기 응신천황應神天皇 3년의 기
               록으로 등장한다. AD 392년, 왜倭 응신천황 3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應神天皇 三年, 是歲, 百濟辰斯王立之失禮於貴國天皇. 故遣 紀角宿禰,羽田矢代宿禰,石川宿禰,

                   木菟宿禰, 嘖讓其無禮狀. 由是 百濟國殺辰斯王以謝之, 紀角宿禰 等, 便立阿花爲王而歸.

                   응신천황 3년, 이 해, 백제 진사왕(辰斯王)이 왕위에 올라 귀국의 천황에게 실례하였다. 그래서 기

                   각숙니, 우전시대숙니, 석천숙니, 목토숙니를 보내어 그 무례함을 책하였다. 이 때문에 백제국은 진
                   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니 등은 아화(阿花)를 왕으로 바꿔 세우고 돌아왔다.






               7) 진사왕辰斯王, 완역 일본서기, 전용신 역, 일지사, 172~173쪽.



               16  임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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