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오산학 연구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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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1)
조선시대 왕립도서관 규장각奎章閣 소장의 기전영지畿甸營誌 수원도호부 고적 편에는 독
성려왕릉禿城麗王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禿城麗王陵在府南三十里禿城山城 庚辰莊獻世子溫幸時歷臨山城 軍李斗燮曰 此中有何古蹟 御
鎭南樓李斗燮對曰 敎本府中樓下長麓有一大塚 自古稱麗王陵云
독성려왕릉은 수원도호부 남쪽 삼십 리에 위치한 독성산성에 있다. 경진년 장헌세자(사도세자)께서
온양 온천 행차시 산성에 머물렀을 때, 군장 이두섭이 이곳에 어떤 고적이 있다고 아뢰었다. 장헌
세자께서 산성의 진남루에 오르자 군장 이두섭이 그 일에 대하여 아뢰었다. 본부중의 진남루 아래
의 산기슭을 가리키며 이곳에 한 개의 큰 무덤이 있는바 옛날부터 려왕릉이라 불린다 하였다.
과연 기전영지에 기록된 독성려왕릉禿城麗王陵의 존재는 사실인가? 필자는 그 가능성을 다
음과 같이 피력한다.
첫째, 독성려왕릉을 기록한 기전영지는 조선시대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에 보관된 서책이다.
조선의 도읍 한성을 둘러 싼 경기도 府, 郡, 縣의 행정과 군사와 경제 등의 조직상황을 세세히
기록한 정부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독성려왕릉이 존재한다는 기전영지의 기록은 그대로 믿어
도 좋다고 본다.
둘째, 조선 정조대왕은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유택을 경기도 양주군 배봉산에서 경기
도 화성시 안녕동 화산花山으로 이장하였다. 지금의 수원고읍성으로 옮기고 현융원顯隆園으
로 칭명하였다. 정조는 하늘로 비상하는 봉鳳의 머리에 해당하는 화산花山을 천하의 명당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어 1790년 정조 14년에는 용주사龍珠寺를 지어 부친 장헌세자의 명복을 빌었다. 또한 화
산 현융원에서 바라보이는 독산禿山을 향로봉香爐峰이라 고쳐 부르고 독산의 토지신에게 제
사를 올렸다.
왕릉을 쓰고 원찰을 세우는 것은 삼국시대 이래 왕가의 전통이었다. 이로 보면 독산禿山에
1) 기전영지畿甸營誌,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독성려왕릉禿城麗王陵의 정체에 대한 小考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