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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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권율 장군의 승전 일화로 유명한 세마대(洗馬臺) 와 전통사찰 제34호 보적사가 있다. <사
진1>
독산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확인된다. BC 8년(온조왕 11) 독산에 목책을 설
치하였고, 독산(禿山), 독산성(獨山城)이라는 지역에서 삼국 간에 여러 차례의 전투가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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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알 수 있으나, 현재 기록에 나오는 ‘독산’의 위치가 어느 곳인지는 불분명한 상태이다. 또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독산성과 관계되어 전해지는 기록은 전혀 없어 독산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권율장군이 임진왜란 시
독산성에 주둔하여 왜군을 물리치며 독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주목받게 된다. 특히 권율장군
은 독산성 전투의 승전 경험을 토대로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며 한양을 탈환할 수 있었으며,
이후 독산성은 경기남부 방어에 중요한 산성으로 인식되었다. 독산성은 단순한 임진왜란의 승
전지가 아니라, 조선후기 산성 방어체제를 강화시키게 된 계기가 된 전투가 이루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4)
오산 독산성이 위치한 독산(禿山)은 본래 석대산(石臺山), 향로봉(香爐峰) 등으로 불려오다가
조선시대에 독성산(禿城山)이라 불려왔으나,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폈던 병법전략에 의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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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洗馬山) 또는 세마대(洗馬臺)라고도 불러진다. 독산은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형성된 완만
한 구릉성 산지로 해발 208m의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수원과 오산, 화성시에 펼쳐진
충적평야 가운데 우뚝 솟아 사방을 멀리 관망할 수 있으며, 독산성의 서북쪽으로 구 수원부 읍
치 및 융건릉이 위치한 화산(花山)과 용주사가 내려다보인다. 독산의 서쪽으로는 황구지천이 북
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어 수로를 통한 교통이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사진 2>
2) 독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세마대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1957년 민, 관으로 조성된 ‘세마대중건위원회’가 건
립하였으며, 1979년부터 2016년까지 6차례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현재 세마대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하나는 건
립 당시 제작한 현판으로 ‘洗馬臺’라고 적혀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준공식 때 ‘洗馬坮’라고 적은 휘호를
내렸다.
3) 京畿道史編纂委員會, 1998, 『京畿道史資料集- 古代篇·高麗篇』, 『三國史記』 pp.10~11
4) 심승구, 2012, 「임진왜란 중 독산성 전투와 그 역사적 의의 –전술적·전략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국학논총』 37권.
5) 烏山市, 1998, 『烏山市史·下』.
42 김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