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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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공수된 24사단의 스미스부대는 1950년 7월 2일 대전으로 북상하여 안성 평
택 선에 진지를 구축하여 후속 주력부대의 내한을 기다리며 지연전을 벌이기 시작
하였다.
1950년 7월 2일, 대전역에 도착하는 스미스기동부대
그런데 수원이 북한 인민군에 점령당한 그 다음 날인 1950년 7월 5일 아침, 미군
의 스미스부대는 오산 북쪽의 죽미령에서 남진하는 북한 인민군을 맞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미 지상군의 첫 전투로 기록되고 있는 오산죽미령전투이다.
스미스부대는 원래 대대장 찰스 B. 스미스 중령의 이름을 따 스미스기동부대라고
하였는데 줄여서 스미스부대라고 부르고 있다. 스미스부대는 완전 편성 부대 조직
의 정수에 모자란 2개 소총중대, 본부중대 일부, 그리고 통신소대로 이루어졌다. 죽
미령 방어선에는 스미스부대 외에 밀러 O. 페리 중령이 지휘하는 미 제52야전 포
병대대 일부 병력도 투입되었다. 이 보병대와 포병대를 스미스 중령이 이끌고 전투
에 임했다. 스미스 중령이 이끈 죽미령전투 인원은 다음과 같다. 스미스부대의 보병
장교 17명과 보병사병 389명, 합 406명. 페리 미 제52포병대의 포병장교 9명과 포
병사병 125명, 합134명. 도합 미군 참전 수는 총 540명이었다.
자세히 시간별로 알아본다.
미 지상군은 오산 부근에 투입되어 1950년 7월 4일에서 5일까지 전투를 하게 된
다.
북한 인민군은 서울 한강 이북을 점령한 3사단과 4사단 병력이 1950년 7월 2일
끊어진 한강 다리를 수리한 다음 영등포를 점령하며 남쪽으로 침공을 계속해 7월 4
일에는 수원을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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