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오산문화총서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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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조선시대 성벽은 현재 부분적으로만 흔적이 확인되고 대부분의 외

                벽은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는 그 상면을 다시 이용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계단식석축시설과 현
                북문지 주변에 조성된 복원성벽 하부에 조선시대 후기의 성벽의 기저부가 부분적으로 잔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문지는 크게 2차례의 변화가 확인되는데, 하층의 문지와 상층의 현

                북문지로 구분된다. 하층의 문지의 외부에는 2~3단의 계단을 조성하여 등성시설이 확인되며,
                이후 북문지가 조성된 후 계단식석렬의 기저부보강층 상면을 이용하면서 평탄화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된다. 계단식석렬의 기저부보강층 외부의 평탄면에서는 조선시대 집수시설, 주거
                지, 수혈유구, 우물이 확인된다. 성벽에 인접하여 다양한 유구가 인접하여 조성되는 것은 특징
                적으로, 성 내부에서 확인된 가장 늦은 시기의 유구의 조성양상[성벽에 근접하여 시설조성, 유

                구의 규모 및 축조양상이 다소 조잡]과 다소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면 5, 도면 6 모식
                도 참고]



                1. 통일신라시대 성벽 및 대지조성층(보강토층)


                 통일신라시대 성벽은 조사지역 동쪽편 경계에 맞물려서 부분적으로만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층[암갈색사질점토층] 하부에서 확인되었다. 확인된 너비는 약 4.5m정도이며, 3·4차 학
                술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던 성벽과 동일한 능선선상에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의 잔존

                규모는 기저부로부터 높이 약 3.5m이다. 부분가공된 할석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로 쌓았으며,
                기반층 위에 바로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성벽에서도 부분적으로 수축이 이루어진 양상이 확
                인된다. 성벽의 기저부에는 기단보축이 확인되었다. 2단이 확인되었으며, 단면형태는 삼각형으

                로 추정되며, 뒤채움은 할석을 주로 이용하여 채웠다. 이후 암갈색과 황갈색사질점토층 교차하
                여 성토하여 전면에 보강토층을 조성하였다. 이후, 기단보축의 보강토층 상면을 적갈색사질점

                토를 이용하여 덮은 후, 그 상면을 이용하여 높이 약 1.2m, 체성벽으로부터 폭 1.5m의 수축성
                벽을 축조하였다. 가공하지 않은 할석을 이용하여 약 9단을 허튼층쌓기로 쌓아올렸으며, 뒤채
                움은 할석을 주로 채워 축조하였다. 기존의 체성벽과 기단보축에 덧대어 축조된 것으로 볼 때,

                수축을 위해 덧대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4차학술발굴조사의 Tr.1에서도 유사한 수축성벽
                이 확인된다. 삼국시대 성벽의 기저부 및 기단보축, 수축성벽에 덧대어 조성된 보강토층은 4
                차학술 발굴조사의 Tr.1의 토층양상과 Tr.5의 토층양상, 금번 발굴조사의 Pit조사 등으로 미루

                어 볼 때 성벽의 전면으로 넓게 축조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기반층을 역자형으로 굴착한
                후, 내부를 암갈색과 황갈색사질점토를 이용하여 교차하여 성토한 양상이 확인된다.



                                                          오산 독산성 북문지 일원 조사성과와 변화양상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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