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0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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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교사 신축
·1952년 / 오산중학교 개교 – 성호고등공민학교 학생은 오산중학교로 전학
성호고등공민학교 부지와 건물은 오산중학교에 출연
·1952년 4월 25일 / 오산면 청학리 17번지 동산농장 소속 터에 교사 신축 청부계약
진실·노작·협동이라는 교훈 아래 지역주민은 물론 선생님, 학생 모두
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작 교육 실시
·1952년 10월 20일 / 오산중학교 설립 인가(6학급)
·1954년 3월 17일 / 오산고등학교 설립 인가(3학급)
·1977년 / 신금봉 이사장 조건부 기여
·1978년 12월 30일 / 오산공업전문대학 설립 인가(18학급)
Ⅷ. 나오며
오산학원은 오산인의 꿈이자 희망이었다. 일제강점기 오산지역 사람들도 꺼져가는 조국의 마
지막 등불로서 교육을 생각해 왔다. 우리민족의 가장 강한 전통으로 매김한 것은 교육이었다.
배움 속에서 내가 있고, 가족이 있고, 사회가 있으며, 국가가 강하게 존재한다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나라가 망해 없어진 상황 속에서도 교육으로 민족의 힘을 단합으로 이끌어내고 언
젠가는 나라를 되찾겠다는 열망으로 살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광복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광
복 이후에도 사회의 모든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그나마 남아 있는 사회기반시설까지도 모두 파괴되는
나라를 황무지 같은 나락으로 떨어뜨러놓았던 것이다. 오산지역도 예외 없이 황폐한 상황이었
고, 그 속에서도 오산인은 교육의 끈을 이어갔던 것이다.
오산에 최초로 자리매김한 교육기관은 오산학원이었다. 이 오산학원은 오산지역 서상길이사
장을 대표로 하는 유지와 화성군수를 포함한 관계기관, 졸업생과 학부모, 화성군의 각 지역, 그
리고 학생들의 기성회비와 학교운영비 등 오산인 전체의 노력과 출연으로 현재의 오산학원을
만들었으며, 후에 ㈜태화의 신금봉이사장의 출연을 통해 현재 유치원부터 오산대학교까지의 오
산의 중심 교육기관으로 발전된 오산학원이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사실에 기반해 작성된 글로서
318 정진흥·남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