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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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린효자정려문(崔廷麟孝子旌閭門)
최정린(1760~1799)선생의 효자각(孝子閣)에는 1831년(순조21년)에 내린 ‘상지이
십이년 효자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최공정린지문 을유오월 일 명정(上之二十二年
孝子 贈朝奉大夫童蒙敎官崔公廷麟之門 乙酉五月 日 命旌)’ 이라는 정려문이 봉안돼
있다.
효자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한식골기와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최정린효자정려각과 정려문(각)
선생의 본관은 수성(隋城)으로 자(字)는 성서, 호는 탑서재(塔西齋)이다. 수성 최
씨는 고려 때 수성백 최영규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공을
많이 세웠다. 선생은 1760년(영조 36년) 11월 11일 오산시 두곡 1동(당시 수원부
초평면 두곡동) 자택에서 태어났다. 최정린 선생의 부친 최진복(崔進福)은 자질과
품격이 단단하고 깔끔하여 세속에 매이지 않는 선비였다고 한다. 모친은 밀양 박
씨로 천성이 어질고 후덕하여 시부모를 섬김에 효를 다하였고, 친척들에게는 따뜻
한 마음으로 대하였으며 손재주도 정교하고 재능이 많았던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워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꼭 부
모님께 공양하였으며 늘 할머니를 모시고 밥을 먹으면서 할머님이 남긴 반찬을 주
시면 반드시 이를 어머님께 갖다드렸으며 어머니께서 혹시 되돌려 주시면 굳이 사
양하여 말하기를 “저는 이미 많이 먹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집안 살림은 청
빈하였고 어머니께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는 것을 보고 본받았으며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어머니께 드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너는 어찌하여 배
고픈 것을 참고 나를 공양하느냐?” 고 말씀하시면 대하여 말하기를 “어머니 역시
어찌하여 배고프신 것을 참으시고 할머니를 공양하십니까?" 하고 말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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