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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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 묘(李商載墓)
이상재 묘는 오산시 서동 산 66-1, 부평 이씨 선영에 소재한다. 오산시향토문화재 제4호
로 지정되어 있다. 연대는 조선 후기로 추정되며, 규모와 수량 크기는 다음과 같다.
1기
• 상석(가로 133×세로 83.5×높이 39.5㎝)
• 향로(가로 33×세로 25.5×높이 52㎝)
• 혼유석(가로 72×세로30㎝)
• 망주석 한 쌍(높이 36×폭 36㎝)
• 묘표(1977년 제작), 시비(詩碑, 1996년 제작)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 출생으로 자는 문
거(文擧)이며, 옥(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조정랑을 지낸 계록(繼祿)이고, 아버지는 광해군
과 동서지간이 되는 군수 덕일(德一)이며, 어머니는 유자신(柳自新)의 딸이다. 사복시 첨정 이
인후의 딸을 맞이하여 혼인하였다.
1630년(인조 8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33년(인조 11년) 식년문과에 병과
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어 저작에 올랐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중국의 사신 학사 강
왈광(姜曰廣)이 크게 존경하여 시문을 받아갔는데, 이 시가 『황화집(皇華集)』-조선시대 명
나라의 사신과 조선의 원접사(遠接使)가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은 책-에 실려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1636년(인조 14년)에 금정도찰방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자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鄭世規)의 종사관으로 출정하여 인조가 피란한 남한산성을 방어
하기 위해 진군하다 용인의 험천(險川:지금의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에서 적의 협공을 받아 분전
했으나 전사하였다. 사후에 홍문관 교리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에 추증되었다. 충신
이상재 행장은 공의 외손인 개성유수 송징은(宋徵殷)이 지었다.
위 묘는 오산시 서동 산 66-1번지 일원의 남서사면에 위치해 있고, 부평 이씨 문중선영
에 위치해 있다. 묘소 앞 좌측에 선생의 충성을 기린 향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묘역은 봉분
과 함께 상석, 향로석, 혼유석, 망주석 한 쌍, 묘표, 시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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