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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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오산시 관내에서 최근까지 확인된 신라~통일신라 유적은 총 14개소 정도이다. 그 중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 553년 이후부터 6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도
                상당수 확인되었는데, 정황상 독산성과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신라가 이 지역을 점

                령한 후 축조한 거점산성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6세기 중반 이후인 신라 북진기부터 사비의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약 한 세기동안 한
                강유역은 신라의 점유 아래 있었으나, 당시 이 일대는 한강 이북의 고구려 및 해안을 통해 접근

                이 가능한 남쪽의 백제의 존재 때문에 언제 뺏고 빼앗기는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각 지역의 편제는 거점인 성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불
                어 603년 고구려는 신라의 북한산성, 즉 현재 서울 아차산성을 침공할 정도로 신라의 북변은 불

                안정했으며, 7세기 전반 백제는 신라의 당성을 뺏기 위해 고구려와 모의하였고, 더불어 백제 동
                북변의 신라 변경에 있는 여러 성을 공격하여 빼앗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한강유역의 북·남쪽
                변경의 불안감은 결국 점령지 주민들의 불안감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그 중에서도 군대 혹은 파

                견인력과 관련된 이주민들이나 전향한 재지민들의 경우 정부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기 위해 군
                대와 행정시설이 모여 있는 산성 주변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통일 이후인 7세기 후반~8세기 전반 경부터는 거점이었던 독산성에서 거리를 두고 유적이
                조성되는 양상이 관찰되는데, 인접한 수원, 화성, 평택 일부까지 포함하여 본 결과 독산성에서
                반경 약 10km 이내에 걸쳐 분포한다. 이는 통일기 축성된 신라 거점성이 대략 20~25km 정도

                의 거리를 두고 분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이는데, 이들 통해 군현을 비정하는 것은 아
                직까지 매우 어려운 일이나 향후 통일신라~고려시대로 이어지는 지역·지명 및 행정구역과 관

                련하여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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