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오산문화총서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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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만 1792년(정조16년) 이후 독산성 내부 건축물들의 배치를 보면  내부 건물은 운주당, 삼
               문, 진남루, 장대, 관청 등 약 168.5칸이 있었으며 민가는 120여 호로 성의 규모에 많은 수의 관
               청과 민가가 내부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봉수가 보수대상에서 제외됐다 하더라도
               기록이 전무한 것은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23)
                한편, 독산성 봉수가 운영되던 시기의 고지도 를 살펴보면 독산성의 명칭이나 성곽만 표기되
               어 있는 반면 주변의 봉수들은 불꽃이나 촛불 형태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조선후기 고지도의 봉수표기 형태는 불꽃이나 촛불 형태 이외에도 원형, 방형,  , 凸형으로 단
                                                             24)
               순화하거나 봉수명만 기입한 경우 등 20여 가지가 있어  향후 독산성 봉수가 운영되던 시기의
               모든 고지도를 종합하여 봉수표기 형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산성 봉수에 대한 검토를 종합하면 문헌기록 등을 토대로 봉수의 축조시점과 운영기간, 위
               치를 추정할 수 있다. 다만, 독산성 봉수가 운영되던 시기의 독산성 보수기 기록과 내부 건축물
               의 배치, 고지도에서 확인되는 독산성의 표기 방법 등을 볼 때 독산성 봉수가 실제로 성 내부에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따라서 향후 매장문화재 조사 등 추가적인 검토
               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Ⅳ. 맺음말





                이상으로 독산성 봉수에 대하여 기초적으로 검토를 진행하였다. 검토한 내용들을 요약하며
               다음과 같다.



                1. 독산성 봉수의 설치는 1690년(숙종16년)에 호조참판 이의징에 의해 최초로 건의가 되지만,
               이후 1728년(영조4년)과 1754년(영조30년)에도 봉수에 설치에 대한 건의가 있는 것으로 볼 때

               독산성 봉수가 실제로 설치되는 것은 1754년(영조30년)으로 판단된다.





               22) 1792년 대규모 보수공사 이후 독산성 내부 건축물의 배치 등은 『華城志』 山城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23) 『東國地圖』, 『海東輿地圖』, 『輿地圖』
               24) 김주홍, 2011, 『조선시대의 내지봉수』, 충북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06  이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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