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오산학 연구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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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조사지역이 속한 독산성은 사적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오산시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독립성 구릉인 ‘독산’(해발 208m)의 7~8부 능선을 둘러쌓은 테뫼식(또는 산봉형) 산성으로 성
벽의 둘레는 1,095m(복원성벽 기준)이다. 성 내에서 확인되는 주요시설물은 성문 4개소, 암문
1개소, 치 8개소, 보적사, 세마대지이다. 성의 주변에는 해발 20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산지와
평야지대가 위치하고, 동쪽으로 약 10㎞ 이상 떨어진 용인의 산곡지역과 평야지대를 관망할 수
있는 중요한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다.
1)
초축시기에 대해서는 문헌기록에 백제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기록 이 있어 매
우 주목되었으나, 이와 관련된 성벽이나 주거시설 등과 같은 적극적인 증거가 확인되지 않아 정
확하지 않다. 그리고 통일신라~고려시대에 대한 축성 혹은 수축기록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당
시 성벽의 형태나 수축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자료가 필요한 실
정이다. 조선시대에 들어 독산성에 대한 기록이 다수 확인되는데, 임진왜란 당시 권율이 진지를
2)
축조하여 왜군을 막았다고 하는 기록 과 한양 남쪽일대를 방어하는데 독산성의 중요성이 인정
3)
되어 석축으로 처음 축성한 기록 이 확인되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에 처음으로 석축성을
쌓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축조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록이다. 이후 숙종대
4)
5)
에 세마대지 일원에 봉수가 설치 되고, 영조대에 두차례에 걸쳐 성벽이 수축 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독산성에서 북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수원화성이 위치하는데, 관방체계상 수원화성 남쪽뿐만 아니라 한양 이남을 방어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소에서는 2016년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한 후, 2017년에는 남문지 일원에 대한 시굴조
사를 바탕으로 2017~2018년에는 1차학술조사를, 2018년에는 2차학술조사를, 2019년에는 3차
학술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에 대한 旣조사현황을 정리하면 아래의 표 1.와 같다.
1) 十八年 百濟禿山城主 率人三百來投, 卷第三 新羅本紀 第三, 三國史記
2) 『華城誌』, 李廷龜禿城山城記.
3) 『萬機要覽』, 關防, 水原府.
4) 『增補文獻備考』卷123, 烽燧編.
5) 『英祖實錄』卷72, 26年 9月 乙丑.
오산 독산성 발굴조사 성과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