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오산시역사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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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시작되었고  이후에는  오산장에서  좀  더  조직적으로  농민과  상인들이  중심이  되

                  어  오산주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빛나는  독립운동이었다.
                    이  오산장  시위는  발안장  시위와  함께  경기도  지역  전체로  만세  시위를  전파시키
                  는  역할을  하였다.
                    이  오산의  만세운동이  벌어진  뒤  곧바로  다음날에는  권율의  세마대첩으로  유명한
                  곳인  독산성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는데,  오산지역의  양산동  주민,  산성면  주민  수

                  백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것으로  파악되는데  일제히  불을  밝히고  만세의
                  함성을  소리  높여  일제에  항거한  것이다.





                  2.  오산만세운동의  배경




                    오산지역이  타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이  펼쳐진  배경에는  오산지역의  교육

                  열을  들  수  있겠다.  오산은  일찍부터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사립학교인  신명학교가
                  있었다.  일제는  이  학교를  폐쇄시키고  1913년  4월  1일  오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
                  등학교)를  개교시킨다.  학교가  타  지역보다  일찍  존재한  것은  교육열이  높았음을
                  추정할  수  있겠다.  또  다른  배경은  천도교의  교세가  있었음을  배경으로  한다.  천도
                  교인들이  만세운동에  많이  참여하였음은  이로  알  수  있겠다.  1905년에  경부선이  개
                  통되면서  오산지역도  농업적인  경제침탈이  가속화되었고,  이러한  사안도  만세운동

                  의  배경으로  볼  수  있겠다.


























                               3․1독립항쟁의사추모비,  오산의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의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추모비로서  오산역  광장에  세워져  있었다가  현재는  오산대역  앞  아래뜰공원으로  이전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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