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5 - 오산학 연구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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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오산 오셔서 정착한 곳이 싸전마당 인근인가요?

                    ▲오산에 와서 44-1번지 오산중앙의원에 1948년에 와서 6·25사변 날 때까지 있었어요. 그
                  후에 1951년부터 의료기관이 너무 열악하고 하니까 미국에서 도와줘서 보건진료소가 의약
                  품을 대주고 보건진료소가 생기면서 제가 처음에 6년을 근무했어요.



                - 그 당시에는 오산이 장도 많고 그러면 큰 부자가 있었겠네요?

                    ▲부자가 있었지요. 시장 안에 박경국 씨 그리고, 서랑리에 차정환씨라고 부자였었고, 장지
                  리에 박승일이라고 있어요. 그분이 제일 부자였지요. 옛날 일정 때부터 6·25사변 때까지
                  부자가 그분들이 제일 부자지.



                - 오산천이 현재하고 그때하고 똑같은 거지요? 변했나요?
                    ▲오산냇가 하천이 높아서 그런데 건축들도 하고 모래자갈을 워낙 많이 파가서 하상이 낮아

                  졌지요. 옛날에는 시내가 더 낮았어. 지금 많이 파내서.


                - 큰 홍수가 3번 났다고 하셨는데요?

                    ▲1953, 54년 궐동 보건소 다닐 때 그 앞의 집이 재건축들이라서 임시로 미군부대에서 목재
                  갔다가(건축했는데) 거기서 살았는데 (홍수가 나서) 방에 이만큼 물이 찰 정도로(큰 홍수가

                  있었다.)


                - 그다음에는 없었나요?

                    ▲그다음에도 몇 번 있는데, 1970년대 말 정도에 비가 많이 왔지. 기흥수리조합에 제방이 물
                  이 새 가지고, 비상이 걸려서 오산비행장 사람들이 제방이 터지면 안 되니까 여기로 해서 사

                  이렌 불고, 군경 차들이 왔다갔다하고 경기도지사가 헬리콥터를 타고 직접 온 거야. 70년대
                  말 정도 될 거에요. 그래서 오산사람들이 다 여기서 어디로 갔느냐 하면 높은 데가 부산리
                  쪽으로 일부 피난을 다 가고 저쪽 건너서는 청학리 오산대학 있는 대로 가면서 오산에 전부

                  다 물 피난을 다 갔어요. 70년대.


                - 그때 오산역은?

                    ▲오산역은 조금 높게 해서 거기까지는 물이 안 찼어. 그다음에는 90년대 중후반쯤으로 홍
                  수 한번 있었고, 그전에도 테니스장에서 내가 테니스를 많이 치곤했는데 30년 넘었지, 하여



                                                            오산장(오산오색시장, 오매장터)의 역사성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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