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0 - 오산학 연구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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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불평을 품고 오든 바 일전 순종황제 성복날에 망곡을 하려고 가는 것을 제지하다가 박승
도라는 학생을 구타하야 상처까지 내었음으로 생도들은 더욱 분개하여 고산 훈도를 해임하기
전은 등교치 아니한다고 결속을 단단히 하얏다고.
동아일보 1927년 6월 14일.
<오산군대승>
수원공보교 주최의 제1회 우승기쟁투 정구대회는 지난 12일 오전 9시부터 수원공보고 제1,
제2코트에서 접전케 되었는바 수원, 용인, 진위, 시흥 4군에서 모여온 40여조의 맹사들의 분
투는 넓은 운동장에 가득찬 관중으로 하여금 많은 취미를 주어 오든바 최후 결승전에 들어가
안중군대오산군의 맹전으로 명예스러운 우승기는 오산군에게 돌아가고 말았다더라(수원)
동아일보 1927년 12월 22일.
운송합동반대로 익명조합을조직, 오산에서 계획중
경부선 오산역의 집산하물 운송취급은 운송합동에 의하여 일수취급으로 되었으나 종전부터
취급이 불친절하고 수수료도 고율이었음으로 동지 거주 유지 40여명의 발기로 독점의 폐해와
불편을 제거할 수단으로 아래와 같은 익명조합의 조직에 분주 중인바 ...생략.
동아일보 1928년 3월 1일.
양차화소된 대성학원준공
사월이내에 완성하가로 청동의 필사적활동
경기도 수원 오산에 있는 대성학원은 5개년 동안을 오산사-ㄹ청년동맹에서 경영하야 많은
무산아동을 교양하여 오든바 불행히 작년도에 이르러 불의의 화재를 당하야 무참히 전소의 비
운을 두 번이나 만나게 되었음으로 동 청년동맹에서는 대성학원중건회를 조직하고 전조선에
명함을 판매하야 그 기본금모집에 노력한다함은 이미 보도한 바이니 동 중건회에서는 지난 26
일 오후 8시부터 대성학원중건회 제일회 임시총회를 열고 각반사항을 토의하였다는데 대성학
원중건회 내무유지에 관한 건에 이르러 장시간 토의한 결과 내무를 수원성내에 두게 되었든
것을 오산으로 옮기기로 하고 임시사무소를 사-ㄹ청년동맹에 두고 동 동맹에서 전책임을 지
고 오는 4월말일 안으로 동학원 불탄자리에 건축하여놓기로 결의하였다하며 다시 사고에 의
238 김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