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오산학 연구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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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오산 독산성(이하 독산성)은 사적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독립성 구릉인 ‘독산’(해발
208m)의 7~8부 능선을 둘러쌓은 테뫼식(또는 산봉형) 산성이다. 둘레는 약 1,095m(복원성벽
기준)이다. 성 내에서 확인되는 주요시설물은 성문 4개소, 암문 1개소, 치 8개소, 보적사, 세마
대지이다. 현재 원성벽은 노출되지 않았으며, 모두 1980년대에 복원성벽으로 둘러져 있다.
독산성은 수원과 오산, 화성시에 펼쳐진 평야 가운데 우뚝 솟아 사방을 멀리 관망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성의 주변에는 해발 20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산지와 평야지대가 위치하고, 동쪽
으로 약 10㎞ 이상 떨어진 용인의 산곡지역과 평야지대를 관망할 수 있는 중요한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다.
1)
독산성 초축시기에 대해서는 문헌기록에 백제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기록 이
있으나, 이와 관련된 성벽이나 주거시설 등과 같은 적극적인 증거가 확인되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리고 통일신라~고려시대에 대한 축성 혹은 수축기록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당시 성벽의
형태나 수축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자료가 필요한 실정이다. 조
선시대에 들어 독산성에 대한 기록이 다수 확인되는데, 임진왜란 당시 권율이 진지를 축조하여
2)
왜군을 막았다고 하는 기록 과 한양 남쪽일대를 방어하는데 독산성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석축
3)
으로 처음 축성한 기록 이 확인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처음으로 석축성을 쌓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축조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록이다. 이후 숙종대에 세마대지 일원에 봉
5)
4)
수가 설치 되고, 영조대에 두 차례에 걸쳐 성벽이 수축 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기까지 지
속적으로 관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독산성에서 북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수원 화
성이 위치하는데, 관방체계상 수원 화성 남쪽뿐만 아니라 한양 이남을 방어하는데 중추적인 역
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오산 독산성은 삼국시대에 초축되어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까
지 지속적으로 경영된 중요한 관방유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 처음 초축되었을 것
1) ‘...十八年 百濟禿山城主 率人三百來投...’, 卷第三 新羅本紀 第三, 三國史記
2) 『華城誌』, 李廷龜禿城山城記.
3) 『華城誌』, 李廷龜禿城山城記.
4) 『增補文獻備考』卷123, 烽燧編.
5) 『英祖實錄』卷72, 26年 9月 乙丑.
오산 독산성 성벽의 축조방법과 변화양상에 대한 소고 15